크메르 제국의 영광을 다시 한 번 캄보디아.

 

정식국명은 캄보디아 왕국(Kingdom of Cambodia)국왕과 수상이 존재하는 입헌군주국이다.

 

◈ 수 도 : 프놈펜 (1,169천명, 2003년 현재)

◈ 인 구 : 13,124천명 (인구성장률:1.8%, 2003년 현재)

◈ 기 후 : 고온다습 (연평균:27℃)

◈ 면 적 : 181,035㎢ (남한의 약 1.8배, 한반도의 4/5)

◈ 주요도시 : Phnompenh. Kratic, Battambong

◈ 언 어 : 크메르(공식어), 프랑스, 영어

◈ 민 족 : 크메르족(90%), 베트남계(5%), 중국계(1%), 기타(4%)

◈ 문맹률 : 69% (1996년 현재)

◈ 종 교 : 소승불교

 

1. 지 리

 

총면적 181,305㎢ 으로, 북쪽으로 태국, 라오스, 동쪽과 남쯕으로 베트남, 서쪽으로, 캄보디아만으로 둘러싸여 인도차이나반도에 자리 잡고 있다. 서쪽해안을 따라 태국만이 만나는 곳에는 충적토(흙과 모래가 떠 내려와 쌓인 평지)가 넓게 자리 잡고 있으며, 그 주변은 산과 동쪽은 메콩강으로 둘러싸여 있다. 평야의 중심에는 메콩이 만들어낸 수장원이 풍부한 똔래삽(Tonle Sap)호수가 있다.  

 

2. 음 식

 

캄보디아의 음시은 태국. 라오스, 베트남등지의 주변국에 영향을 받으면서. 그들만의 독특한 음식문화가 형성되었다. 프놈펜과 씨엠립의 음식점의 증가는 중국음식과 베트남음식을 즐길수 있게끔 되었고, 쌀은 주재료이며, Battanbang Region은 전통 밥그릇이다. 대부분의 캄보디아음식은 chnang khteak이라는 중국식 요리용 팬으로 요리를 한다.

 

3. 기 후

 

북위 10~14°에 걸쳐진 열대기후대로 년평균 섭씨 25°로 년중 일정한 기온을 유지한다. 밤의 습도가 매우 높아 90%정도이고, 낮에는 80%를 유지한다. 11월부터 2월까지 이어지는 건기에는 22-31℃, 평균 강수량은 47㎜이다. 일조시간이 평균 8시간에 이른다. 3월부터 5월까지는 캄보디아에 매우 무더운 날씨가 찾아온다. 평균 기온 24-37℃, 평균 강수량 70㎜이다. 특히, 4월은 북동 몬순의 영향으로 기온이 상승하고 강수량이 현저히 줄어든다. 5월부터 10월에 이르는 우기에는 남서 몬순의 영향으로 비가 많이 내린다. 평균기온 24-32℃, 평균강수량 193㎜이다. 특히 오후에는 장댓비를 내리면서, 거리가 넘치는 경우가 잣다.

 

4. 전 압

 

220-240V, 50Hz

 

5. 통 화

 

단위는 리엘(CR :Cambodian riel)이고, 100, 200, 500 리엘이 있다.

US Dollar는 일반적으로 전국에 걸쳐 통용되고 있다. 프놈펜에서는 제한적으로 신용카드 사용이 가능하며, 여행자수표도 사용이 가능하다.

 

6. 통 신

 

전화를 이용하려면, 프놈펜, 씨엠립, 시하녹빌, 바땀방, 콩풍참 등 사이에는 위성. 지상회선, 휴대폰, GSM, 단파 방송등을 이용한 통신이 가능하다.

국제전화는 우체국, 호텔, 사설 비즈니스센터, 공중전화에서 가능하다. 그러나 수신자부담 전화는 이용할 수  없다.

 

씨엠립의 평균 기온 ?

  

     (구분)          평균기온(℃)         최고기온               최저기온

      1월                25.4                     32.0                      19.7

      2월                27.1                     33.3                      20.8

      3월                30.4                     34.6                      26.1

      4월                30.4                     35.5                      25.1

      5월                30.5                     35.2                      25.4

      6월                29.2                     33.5                      24.8

      7월                28.4                     32.7                      24.8

      8월                28.5                     32.0                      25.0

      9월                28.4                     32.2                      24.5

     10월                27.6                     31.3                      23.9

     11월                26.5                     30.6                      22.4

     12월                25.7                     31.0                      20.3

 

캄보디아 개황

 

공식 국명 : 캄보디아 왕국, The Kingdom of Cambodia

정치 구조 : 입헌군주제

국왕 : 노르돔 시아모니 취임 2004년 10월 29일

수상 : 훈센(최고 실권자, 1985년 1월 14일부터), 부수상 6명

정당 : 캄보디아 국민당 CPP당 73석,

        훈신펙당 Funcipic당 26석

        삼랑시당 Sam Raninsy당 24석

입법부 : 양원제(상원 61석, 하원 123석)

정부 성향 : 비동맹, 중립노선,

                친 서방 외교 중시

최근 총선 : 2003년 7월  (다음 총선: 2008년 7월 예정)

수도 : 프놈펜 Phnom Penh, 인구 150만 명

국토 면적 : 181,035m

인구 : 14백만 명

인구 밀도 : 77명/km2

언어 : 크메르어

민족[인종] : 크메르인 80%, 베트남 12%, 화교 3%, 기타 참족 등 30여 인종

외국인 : 태국인 3만명, 프랑스인 2천명, 한국인 1,800명, 미국인 1,300명, 일본인 1,200명

종교 : 불교 90%, 이슬람, 기독교 및 천주교 10%

기후 : 열대 몬순

      우기 : 5월 중순~11월 중수

      건기 : 11월 중순~5월 중순

시차 : 한국보다 2시간 느림

전기 : 220v 50Hz

평균수명 : 남자 57세, 여자 61세

문맹률 : 15세 이상 26.4% 남(15.3%), 여(33.9%)

교육 : 초등학교 졸업 46.8%, 중학교 졸업 20.57%, 고등학교 졸업 8.92%, 대학교 졸업 6%

GDP : US$ 62.87억

1인당 국민소득 : US$ 448

경제 성장률 : 13.4%

물가 상승률 : 6.7%

경상수지 : US$ 5.93억

외채 : US$ 31.8억

외환 보유고 : US$ 9.15억

화폐단위 : 리엘 Riel

환율 : 1 US$=4,200 Riel

산업구조 : 농업 32.3%, 제조업(건설 포함) 25.3%, 서비스업 37%

농경지 : 약 4,846,000헥타

주요작물 : 쌀, 고무, 옥수수, 고기, 채소, 설탕, 밀가루

교역 : 수출 US$ 29.1억, 수입 US$ 39.3억

시엠립 주 전체 주민 : 88만명, 시엠립은 12개의 군과 100개의 면으로 되어있다.

시엠립 : 28만명,

        시엠립에는 80개의 호텔과 150개의 게스트하우스,

        1,500명의 투어 가이드가 일하고 있다.

[최근 경제동향 2005년 기준]

 

앙코르 왓 Angkor Wat

건축시기 : 12세기 초반,

           1113녀부터 1150년 사이

           후기에 복구 및 첨가

건축양식 : 앙코르 왓

: 수리야바르만 2세

종교 : 힌두교(비슈누 숭배)

 

배경

“이 아름다운 사원은 크메르인이 만들었을리 없다. 중국인 건축가가 만들었다. 인도인이다. 아니다. 신이 만들었다.” 등 의견이 분분하지만 크메르의 건축은 하루 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노력과 벌전 과정을 통하여 수백년 이상의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12세기 초 수리야바르만 2세는 세계에서 가장 화려하고 웅장한 앙코르 왓을 건축하여 그 영화는 절정에 달하였다.

 앙코르 왓은 영묘였을까? 왕국이였을까? 혹은 사원이였을까? 사실 이 세가지의 역할을 전부하였고 제신의 거처 역할도 하였다. 한때는 ‘비슈누의 성스러운 거처’란 뜻으로 ‘비슈누코크’라고 불리었던 것만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지금은 그 자취를 찾을 수 없지만 사원의 북쪽에는 왕궁이 있었다. 프랑스 학자 ‘에이모니에’는 “이 사원의 1차적인 용도는 왕궁이었고 후궁들이 살고 있었다.”고 말한다. 수리야바르만 2세는 죽어서 ‘파라마비슈누로카’라는 칭호를 얻었으며 앙코르 왓은 왕릉이 되었다.

‘앙코르’라는 말은 산스크리트어로 도시를 뜻하는 ‘나가라’(Nagara)에서 파생된 말로 노코르(Nokor)-옹코르(Ongkor)-앙코르(Angkor)로 음운변화를 일으켜 크메르어화한 말이다. ‘앙코르 왓’을 직역하면 ‘도시의 사원’이다. 왓은 태국말로 절이란 뜻인데 16세기부터 붙여진 이름이다. 전설에 의하면 인도의 유명한 승려인 ‘부다고샤’(Buddhag-hosha)가 스리랑카에서 불교 경전을 가지고 와서 앙코르 왓으로탈바꿈했다고 한다. 그전에는 그냥 앙코르로 불리었다.

 

계획

 

앙코르 왓은 1113년부터 1150년까지 37년간 2만 5천명이 동원되어 지는 달과 떠오르는 달의 두그룹으로 나뉘어 지어졌으며 비슈누에게 헌정되었다. 앙코르를 처음 발견한 것으로 알려진 앙리 무어는 1860년 앙코르 왓을 보고 “하늘의 청색, 정글의 초록색, 건축물의 장엄하면서도 우아한 곡선이 너무 절묘하게 어울러져 있다.”고 지적하였다.

 

 해자까지 포함한 사원의 크기는 동서로 1.5km, 남북으로 1.3km로 총 200헥타에 이르는 앙코르 지역에서 가장 큰 사원이다. 서쪽에 정문이 있고 중앙에는 해자를 가르는 다리가 250m 길이에 폭이 12m인 사암으로 되어 있다. 우주의 중심에는 메루 산이 있고 우주를 둘러싸고 있는 산맥을 성벽으로 표현하고 산맥을 둘러싸고 있는 무한히 큰 해자가 있다. 이 해자는 고해의 바다로 해자를 건너면서 마음 속의 증오, 불만, 자만, 죄악 등 모든 것을 버리고 순결하고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신을 만나야한다.

 

 다리의 양편에 나가상이 조각된 난간이 있는데 이 나가는 원래 물에 사는 용의 형상과 결합시킨 뱀으로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무지개의 상징으로 여겨왔다. 다리 중간 지점에 십자형으로 만든 계단이 물과 연결되어 있고 육지로 오르는 통로 구실을 하고 있다. 옛날에는 중앙의 다리 양편으로 나무로 된 다리가 두 개 더 있었다고 한다.

 

 동서남북에 고푸라 있고 서쪽에는 다섯 개의 고푸라가 있다. 왕은 중앙 문으로 출입했으며 귀족이나 승려는 중앙 문의 좌우에 있는 양쪽의 문으로 다녔고, 수레나 코끼리가 다닐 수 있는 지면 높이의 통로가 양쪽의 끝에 두 개 더 있었다. 외부 성벽의 정문은 230m로 앞에 회중석이 있었으나 지금은 그 자취만 남아있다. 중앙에는 높은 세 개의 고푸라가 있어 내부의 방과 연결된다.

 

 라테라이트로 된 성벽은 높이 4.5m, 넓이 1,025m×802m로 성벽내의 면적은 82헥타이고, 중간에 위치한 테라스 건물의 면적은 332m×258m로 약 9헥타이다. 나머지 90%의 면적은 도시로 사용되어 약 2만명이 이곳에 거주하였다고 ‘스티얼린’은 추산한다. 전통적으로 사원의 북쪽 지역에 왕궁이 있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증거는 남아 있지 않다. 중앙 고푸라를 통해 성안으로 들어서면 지면에서 높이 1.5m에 폭 9m의 중앙 도로가 350m에 걸쳐 있어 중앙 회랑으로 연결된다. 중앙 도로 중간에 십자형 테라스로 양편에 계단이 있고 도서관과 연결된다.

 

 도서관은 40m×6m로 회중석과 둥근 천장으로 되어 있고 사방에는 통로가 있다. 왼편에 있던 허물어진 도서관은 아나스틸로시스 공법에 의해 2005년에 완공되었다. 조금 더 드어가면 우측과 좌측에 65m×50m의 연꽃이 핀 인공 저수지가 있다. 저수지에서 동쪽으로 20m쯤 가면 지대가 1m 높아지면서 270m×340m의 대지가 나온다. 이 대지 위에 187m×215m의 앙코르 왓이 나온다. 3번째 회랑이 나오는 중앙 길은 다이 높아지면서 여인들이 왕을 위해 춤을 추었다는 명예의 테라스가 나온다.

 사원은 피라미드의 탑과 집중적인 회랑으로 나눌 수 있다. 8세기의 악 윰이나 9세기의 바꽁 사원 같이 힌두의 우주관을 상징적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연속적으로 발전시켜 히말라야의 메루 산을 사원산으로 표현하고 부속 건물들을 탑 주위에 첨가시킨다. 앙코르 왓은 3개의 층으로 된 피라미드로 되어 각 층마다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다. 최정상은 오탑형(Quincunx)으로 다섯 개 탑이 왕관을 쓰고 있다.

 

앙코르 왓은 힌두의 소우주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해자는 지구를 둘러싸고 있는 신화의 대양을 의미하며 연속된 동심의 회랑은 신들이 살고 있는 메루 산을 둘러싸고 있는 사맥을 의미한다. 정상의 탑들은 산꼭대기의 봉우리를 의미한다. 아마도 중앙 성소를 오르는 작업은 의식적으로 진짜 히말라야를 오르는 것이다. 사원의 높이는 65m이다.

 

 앙코르 왓이 서쪽으로 문이 있는 것은 비슈누가 우주의 서쪽를 관장하는 신이기 때문이라는 설과 서쪽은 죽은자의 영역이기 때문에 장례식을 치르던 장소라는 설, 그리고 새로운 이 단지가 기존의 ‘야소다라푸라’에 삽입된 지역이므로 만일 동향으로 배치한다면 종전의 주거지역을 외면하고 다른 곳을 바라 보게 되어 좋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학설이 있다.

 

평면으로 이어진 세 번째 회랑의 출입구로부터 계단으로 이어진다. 계단 통로는 둥근천장으로 되어 있으며 위층에 세 개의 출입 전각을 형성하여 네 개의 안뜰을 만든다. 4줄의 기둥이 있는 2개의 통로가 있으며 의식에 꼭 필요한 정화수를 보관하는 4개의 수조가 있다. 서쪽 모서리에는 도서관이 남북으로 2개가 있다.

 

 2층은 수도실을 통해 안뜰로 연결된다. 도서관은 왕이 이용하던 서쪽 계단을 사이에 두고 양편에 위치한다. 2층은 일반인들에게는 출입이 허용되지 않았다. 어두운 2층 회랑은 100m×115m로 바깥쪽에는 창문이 없다.

 

 3층의 기초 단은 75m×75m, 높이는 13m로 되어 있다. 70도 경사로 된 11개의 계단과 50도 경사로 된 1개의 계단은(서쪽 중앙 계단: 왕이 사용) 60m×60m의 첫 번째 회랑과 연결된다.

 

 3층의 첫 번째 회랑은 십자형으로 정화수를 보관 하는 4개의 수조가 있다. 높이 42m의 견고한 중앙 탑이 다른 구조물을 종속시키는 형태를 취하고 있다. 원래는 4개의 출입문이 있고 비슈누상을 봉안하고 있었지만 불상을 얹어 놓았다. 1908년 실종된 석상의 대좌를 파헤치자 그 밑에 25m 깊이의 밀실 속에서 보석을 발견하였다.

 

 1,500개가 넘는 여신과 압사라들이 벽감에 조각되어 우리를 즐겁게 하고 5개의 탑들의 마지막 상부까지 신화적인 장면들로 장식했다.

 

 앙코르 왓의 완벽함은 몇 가지 원칙을 준수했다는 점에 있다. 출입구 누각과 건물을 이어주는 통로는 서쪽 정면의 길이보다 두 배의 길이로 하여 원근 투시의 거리를 두어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계했다. 아래쪽 테라스의 회랑이 위쪽 건물의 시야를 가리지 않도록 만들어 완전한 피라미드를 본다는 인상을 주도록 했다. 완벽한 건조물은 지상낙원의 꿈을 실현했으며 인류에게 지고한 아름다운 걸작품을 남겨주었다.

 

 현재 남아 있는 앙코르 왓은 원작에 비해 신성함이 결여되어 있다. 앙코르 왓을 방문하는 사람들은 사원이 텅 비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것이다. 한때는 각 방이 수백개의 진귀한 시들의 조각품들과 보석 장식물로 가득차 있어 화려했었다. 성골을 모시던 제단의 문은 사라져 버렸고 십자 회랑의 지붕은 약탈되었다. 중앙에 있던 비슈누상은 파괴되었고 일부 유적은 프놈펜의 국립 박물관이나 시엠립의 유적 보관소로 옮겨져 보관되어 있다.

 

앙코르 왓의 부조

 

앙코르 왓은 중앙 탑에서부터 세 개의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세 번째 회랑의 사암 벽에는 아름다운 부조가 조각되고 있다. 회랑의 부조는 높이 2m에 모서리 전각을 제외한 전체 길이는 600m에 이른다. 전통적인 방법으로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보는 ‘프라다크시나’(Pradakshina)의 방법으로 보면 왼쪽 모서리 전각으로부터 시작하여 라마야나의 대서사시 ‘랑카의 전투’부터 우측으로 돈다. ‘앙코르 왓을 방문하는 순례자들이여 오른쪽으로 도시오’ 라고 쓴 커다란 간판이 1920년에 프놈펜에 세워져 있었다. 그러나 앙코르왓은 왼쪽으로 돌면서 봐야한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다. ‘프르질루스키’와‘보시’는 힌두교의 장례의식은 ‘프라다크시나’ 대신 시계방향으로 도는 ‘프라샤바’(Prasavya) 방식을 채택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비슈누의 영광과 수리야바르만 2세의 신성한 권위 그리고 전쟁의 정당성을 상징적으로 부조를 통해서 표현하고 있고 급기야는 수리야바르만 2세를 비슈누와 동일한 이미지를 주려고 노력하였다.

 

 동서남북 그리고 중앙 탑으로 들어가는 4개의 입구를 중심으로 크게 8개의 주제로 나누었고 북서쪽 코너와 남서쪽 코너에 또 다른 복잡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다. 동쪽 벽면은 희망, 생명, 천지창조를 의미하는 우유의 바다 젓기를 조각하였고, 서쪽은 죽음, 절망 등 랑카의 전투와 쿠륵세트라의 전투 장면을 조각하였다. 북쪽은 신들이 사는 곳 신들의 이야기가 표현되어 있고, 남쪽은 자연으로 왕의 행진 장면과 지옥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